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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웅 중구난방] 사실 열강의 미래를 전시했던 엑스포:리더스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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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웅 중구난방] 사실 열강의 미래를 전시했던 엑스포

김대웅 | 기사입력 2023/06/04 [15:18]

[김대웅 중구난방] 사실 열강의 미래를 전시했던 엑스포

김대웅 | 입력 : 2023/06/04 [15:18]

▲ 김대웅 문화평론가 [[사진=리더스인덱스]


[김대웅 중구난방] 민족과 언어를 초월해 전 세계 인류가 한데 모여 행사를 벌인다.

 

인류가 이루어낸 과학적 진보의 발자취를 느끼며, 신기한 발명품과 새 시대를 향해 선보인 테크놀러지의 위대한 업적에 눈과 귀를 모은다. 세계 최대 규모의 장터, 하지만 상거래는 없고 구경거리만 있는 장터이다.

 

이처럼 엑스포는 많은 관람객들을 모아놓고 인류가 이룩해낸 과학기술 문명을 자랑스레 보여주는 전시장이다. 무한궤도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과학문명과 인류의 장밋빛 미래를 보여주는 화려한 전시장, 그것이 바로 엑스포의 모습이다.

 

만국박람회라고도 불리는 엑스포는 뭔가를 보여준다는 뜻의 엑스포지션(exposition)’의 약자이다. 그러므로 엑스포는 말 그대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것들을 전시해서 보여주는 박람회를 말한다. 

 

엑스포에 전시되는 것들은 상업적인 목적을 지닌 무역전시회(SITRA)의 전시상품들과는 다르다. 무역전시회가 상거래를 주목적으로 특정한 상품을 전시한다면, ‘국제박람회기구(Bureau of International Exposition ; BIE)’가 공인한 엑스포는 일반 대중의 교육과 계몽을 위해 인류가 이룩한 성과들을 전시한다.

 

그리하여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비전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엑스포는 협력을 드높이는 기회로 삼기도 한다.

 

 

엑스포의 발자취

 

최초의 국제적인 엑스포는 1851년 영국의 앨버트 공이 산업혁명의 성공을 자축하기 위해 런던에서 개최했다.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도 이 박람회를 두 번이나 구경했는데, 길이 560미터짜리 수정궁을 보고 찬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엑스포는 이렇게 영국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그 규모와 내용을 발전시킨 것은 프랑스 사람들이었고, 전 세계적인 행사로 확대시킨 것은 미국 사람들이었다. 그 중 획기적인 발명품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역대 엑스포들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지 100년이 되는 1876년 신대륙의 산업발전을 유럽에 자랑하기 위해 개최한 필라델피아 엑스포는 인류의 통신부문에 커다란 변혁을 일으켰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누리고 있는 가장 편리한 문명의 이기인 자전거, 전화, 타자기, 축음기 등이 이 필라델피아 엑스포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전화의 발명은 지구촌의 공간개념을 거의 재편시켜 놓았다. 

 

1876215일 오후 1시경 엘리샤 그레이(Elisha Gray)보다 몇 시간 빨리 특허신청을 낸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이 독점권을 따낸 전화는 같은 해 열린 박람회에 출품되어 대단히 인기를 끌었다. 사람들은 거리에 관계없이 먼 곳에서도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고, 이는 전 세계 커뮤니케이션 분야에 일대 혁신을 일으킬 전조가 되기에 충분했다.

 

오늘날 바쁜 현대인들의 필수품으로 자리잡게 된 무선전화기, 카폰, 휴대용 전화기 등은 바로 1876년 갓 태어난 아기의 모습으로 필라델피아에서 첫선을 보였다.

 

1878파리 엑스포에서 처음 전시된 냉장고는 여성들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차갑고 시원한 음료와 단단하게 얼린 얼음을 계절에 상관없이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당시 사람들의 음주습관마저 바꿔놓을 정도였다.

 

그 후 1889년 파리에서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 파리 엑스포가 개최된다고 발표되자, 무려 11년 동안이나 엑스포가 열리지 않아 지루하기 짝이 없었던 유럽 대륙은 다시 한번 술렁이기 시작했다. 파리 엑스포의 기술적 상징이자 파리 아름다움의 상징인 276미터 높이의 에펠탑이 이 박람회에서 선을 보였다.

 

그러나 당시 지식인들 사이엔 이 에펠탑을 둘러싸고 찬반양론이 벌어졌다. 심지어 소설가 모파상은 에펠탑을 야만적인 공장 굴뚝이라 혹평하고 그날 당장 파리를 떠나버리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후 사람들은 모파상이 에펠탑 안의 식당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모파상은 이렇게 투덜댔다.

에펠탑이 안 보이는 곳은 여기밖에 없잖아.”

아무튼 에펠탑의 완공으로 파리는 명실상부한 전 세계의 수도로 우뚝 솟아오르게 되었다.

 




***1851년 영국의 앨버트 공이 산업혁명의 성공을 자축하기 위해 개최한 최초의 엑스포가 런던의 560미터짜리 수정궁에서 개최되었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한 그랑 팔레(Grand Palais)’ 철골과 유리로 된 거대한 지붕은 아르누보의 특징이다. ()

 

1900년 파리 엑스포에서는 지하철과 전기 궁전이 위용을 드러냈다. 이때 선보인 지하철은 기술적인 발전을 거듭해 세계적으로 확산되었으며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교통수단으로 자리잡았다.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사람들은 엑스포를 통해 세계라든지 만국이라고 하는 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엑스포에서는 전 세계의 각종 정보가 집합되었다가 다시 세계 각지로 확산되었다.

 

부드러운 곡선을 이용한 식물의 넝쿨과 같은 아르누보 스타일이 순식간에 세계로 퍼지게 된 것도 1900년의 파리 엑스포 때문이었다. 또한 이 전시회가 너무 화려했기 때문에 쿠베르탱 남작이 직접 지휘한 2회 올림픽이 엑스포의 부속행사로 전락해 버렸을 정도였다. 

 

1904년에 열린 세인트루이스 엑스포는 비행선과 무선통신을 선보임으로써 통신부문의 2차 혁명을 일으켰다. 

 

1939년 시작되어 1904년까지 계속된 뉴욕 엑스포는 엑스포 황금시대의 최후를 장식했다. 이 행사에는 44백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몰렸고, 그래서 사람들은 뉴욕 엑스포를 빅 페어(Bic Fair) 또는 피플스 페어(Peoples Fair)라고 부르기도 했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가장 힘찬 박람회라고 평가되는 뉴욕 엑스포는 미국의 웅대한 꿈을 반영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20세기 미국의 눈부신 발전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지금 세계를 휩쓰는 음료 코카콜라가 여기에서 첫선을 보여 세계로 시장을 넓히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텔레비전의 출품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한 오랜 수명을 자랑하는 나일론과 플라스틱이 선보여, 이후 사람들의 생활문화를 아끼고 오래 보존하던방식에서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방식으로 변화하게 만들었다. 생산비용이 얼마 들지 않는 화학섬유와 플라스틱 제품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기는 했으나 곧 환경오염과 쓸데없는 소비문화를 몰고 왔다는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뉴욕 엑스포에서는 또한 풍자적이나마 선의와 평화를 기원하는 행사가 계획되었으나 성취되지는 못했다. 이미 유럽에서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체코와 알바니아는 엑스포 전시회장에 반기를 올려 독일의 침공에 항의했다. 장밋빛 미래를 전시했던 뉴욕 엑스포가 끝나자 바로 전쟁은 전면전으로 확대되어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고, 세계는 또다시 혼란상태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1962년의 시애틀 엑스포에서는 자동판매기와 모노레일이 선보임으로써 미래의 교통수단을 제시해 주었다.

 

 

우리나라는 1893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지 400년이 되는 해를 미리 기념하기 위해 개최된 시카고 엑스포에 처음 참가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종 30년 당시 우리는 8칸짜리 기와집, 관복, 도자기, 부채, 가마, 활 등을 출품했으며, 10여 명의 악사를 보내 우리의 전통 국악을 서양에 처음 소개했던 것이다. 그 후 100년이 지난 1993대전 엑스포를 개최함으로써 우리도 인류의 과학문화 제전을 주도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산업사회의 꽃 엑스포는 정보사회로 넘어가면서 정보 엑스포로 크게 탈바꿈할 전망이다. 뉴밀레니엄인 2000년에 엑스포를 개최한 독일의 하노버는 산업사회의 엑스포와 미래의 정보 엑스포를 종합시켰다. 예를 들면 가상세계(Virtual World)’를 통해 독일의 유명한 맥주 축제를 전 세계 사람들이 동시에 즐김으로써 맥주의 참맛을 상상해 보도록한 것이다. 어느덧 엑스포의 주류를 이루던 하드웨어는 정보사회의 소프트웨어에 자리를 넘겨주고 말았다.

 

우리나라에서 열린 엑스포 여수에서 열린 엑스포는 인정박람회이며, 대전엑스포는 등록/인정 구분이 만들어지기 전이라 인정박람회로 분류되고 있으나 현행 인정박람회에서 규정하는 규모보다 컸다는 차이가 있다.

 

이번에 부산에서 방탄소년단을 내세워 2030년 엑스포의 개최 의지를 보인 우리나라가 유치에 성공한다면 이는 최초의 등록박람회가 되며, 벨기에, 프랑스, 미국, 아이티, 캐나다, 일본, 스페인, 독일 중국, 이탈리아, 아랍에미레이트에 이어 세계 12번째로 등록박람회를 개최하는 국가가 된다. 그리고 미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일본,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3대 행사인 올림픽과 월드컵, 엑스포를 모두 개최하는 세계 7번째 국가가 되는 의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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