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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대원 독서일기] 아주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변대원 | 기사입력 2024/05/05 [08:11]

[변대원 독서일기] 아주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변대원 | 입력 : 2024/05/05 [08:11]

▲ 변대원 작가, 독서지도전문가 [사진=리더스인덱스]  ©


[변대원 독서일기] 아주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 사무실에 나와 2시간동안 새벽독서모임을 하고,

명상을 하고, 필사를 하고, 낭독을 한다.

여유있게 읽은 책에서 발견한 문장을 정리하다보면

어느새 9시에 가까워진다. 사람들이 출근 전에 커피를 많이 주문하는 시간이라 붐비기 때문에 조금 기다렸다가 915분쯤 커피를 한잔 사러 나간다.

그렇게 어김없이 두 달 넘게 비슷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물론 그 사이에 일본도 다녀오고, 부산도 다녀오고, 서울과 경기도 여러 곳도 다녀왔지만.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런 일상으로 나는 여행을 와 있는 게 아닐까

 

새벽마다 피곤한 몸과 내적 투쟁을 하며, 무거운 몸을 일으켜 씻으러갈 때도,

샤워를 마치고 마지막에 찬물샤워를 할 때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번쩍 정신이 드는 순간에도,

독서모임을 하는 도중에 계속 하품을 하며 한쪽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가며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수많은 불편을 딛고 이 일상을 반복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 순간의 내가 여행 중인 것처럼 느끼고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신기하게도 일상에서는 그렇게 귀찮고 별 볼일 없는 일도 여행지에 가면 다 새롭고 신선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다리도 아프고, 길을 잃어버려서 한참을 헤매도 그것마저 즐거우니까.

 

어쩌면 나는 매일 아침마다 내가 꿈꾸던 여행을 즐기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 다시 또 다른 목적지를 여행하는 것을 꿈꾸고 있다. 여전히 내가 가보지 못한 그곳들을.

 

그 목적지는 특정한 장소이기도 하고, 나를 설레게 하는 특정한 목표이기도 하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고, 이미 여러 번 먹었지만 또 찾아가 먹고 싶은 음식이기도 하다.

 

삶은 관점에 따라 언제나 여행이 될 수 있다.

물론 그 관점이 쉽게 내 마음대로 매순간 바뀌지 않는다는 게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그것마저 쉽길 바라는 건 과한 욕심이다. 아니 오히려 일상의 무료함이 없다면 여행의 설렘도 없어지고 말거다. 자칫하면 모든 여행의 순간이 모두 무료한 일상처럼 바뀔지도 모를 일이다.

 

가끔 음악이 없는 책방에서 그런 적막함을 느낄 때가 있다.

마치 일출을 보러 바다를 갔는데 날씨가 흐린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그런 모든 상황들이 다음번에 더 나은 상황이 왔을 때, 몇 배는 더 풍요롭게 그 시간을 느낄 수 있게 도와준다. 내가 좋아하는 잔잔한 재즈 음악과 따뜻한 공기와 빛이 흐르는 공간을 만날 때 놓치지 않고 알아차릴 수 있게 만든다. 바다 저 멀리서 해가 솟아오를 때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든다.

 

그러므로 일상을 여행처럼 누리는 충만한 시간도, 때론 무료하고 때론 답답하게 흘러가는 일상도 모두 소중한 나의 지구별 여행의 일부임을 인정하게 된다.

 

오늘은 올해 중학생이 된 딸의 생일이다.

있다가 오후쯤에 우리 가족 단톡방에 저녁에 뭘 먹고 싶은지 딸에게 물어보고, 들어가는 길에 케이크를 사들고 갈 것이다. 같이 둘러 앉아 밥을 먹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선물을 주고, 박수를 치고, 서로 웃고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하며, 잠시지만 일 년에 한번 오는 하루를 기념할 것이다.

 

아마 딸은 하루 종일 이유 없이 기분이 좋을 테고. 나도 그런 딸을 생각하니 이유 없이 미소가 새어나온다.

 

이처럼 아무것도 아닌 날도 의미를 부여하고 관점이 바뀌는 순간 그 시간의 결이 달라진다.

삶이 늘 내가 생각했던 대로 흘러가진 않지만,

오늘도 '나의 하루'를 보다 '충만한 하루'로 만드는 것은 결국 내가 '이 하루'를 어떻게 느끼고 바라보느냐 임을 잊지 않으려 한다. 아주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 [사진=변대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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